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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년시절 나는 이미 도박중독자였다.

(2)-2 어린시절부터 보이던 중독자의 특성. (중학교)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저는 집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동네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긴장감과 함께 시작된 중학교 생활은 평범한 학생들이 회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거 없이 마치 무한 경쟁 사회에 진입을 알리는 '시험'의 시작 그리고 사춘기라는 큰 변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인생에 계속 함께하게 될 몇몇의 소중한 친구들과의 인연이라는 여러 가지 기억들이 공존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에 언급한 학창 시절의 공통적인 과정과 덧붙여 '도박중독자' 시작을 알렸던 중학교 시절의 몇 가지 기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적이라는 경쟁의 시작'

청소년기 우리 집의 형편은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습니다. 작은방 두 칸짜리 빌라에 4인 가족이 거주하며 생활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고 분위기 자체가 온전히 화목하지는 않은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반대로 중학교로 진학을 하며 대부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거 같은 같은 동네 친구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큰 동네의 다양한 지역의 학교로 가보니 거기에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저보다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 무렵까지 학원이라는 건 일체 다녀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시험이라는 제도의 중요성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에서 전교생 450명 중 중간 수준의 등수를 받게 되고 (나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치곤 괜찮았다 생각하는데) 나름 자식 교육에 대한 욕심이 있으셨던 부모님은 저에 대해 굉장히 실망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난생처음 학원이라는 곳에 가보게 됩니다. 또 특이한 것은 시작을 높은 곳에서 해보라는 의미셨는지 아니면 아들의 현 수준에 대한 과대평가이셨는지 모르겠지만 학업능력의 수준을 바탕으로 약 14개의 반으로 분류되어 있던 그 학원의 입학테스트에서 저는 아버지와 그 학원 실장의 인맥으로 테스트 없이 소위 지역구 중학교들에서 최상위권 아이들만 모여있는 특수반에 처음 입학을 하게 됩니다.

 

입학 첫날 학원 근처의 동네에 아무런 친구도 없었던 저는 수줍게 반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고 이어서 수업을 시작했는데, 당시 알파벳도 겨우 알게 된 저와는 반대로 학원 수업 자체를 모두 영어로 진행하는 선생님과 그리고 이게 일상생활인 듯 양 집중하는 학생들을 보며 패배감과 비참함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더욱이 비참했던 건 입학 첫날이 겨울의 어느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었었고 수업이 끝난 밤 10시경 저는 집 방향으로 가는 학원버스조차 어찌 타는지 몰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걸어가던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어린 마음이지만 서러움과 비참함에 목놓아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저를 보고 그날 내심 아들로부터 등원 첫날의 설렘과 경험을 들을 거라 예상하셨던 부모님은 놀람과 동시에 그동안 다른애들처럼 교육을 제대로 못 시켰다는 미안함으로 함께 슬퍼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부모님을 따라가 학원을 그만두었고 조금 더 수준이 떨어지는 거주지 근처의 조그만 보습학원 그리고 그중에서도 거의 최하위 반으로 입학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눈 오는 밤 서럽게 울며 걸어왔던 기억때문인지 나름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그다음 시험에서 전교50등 그리고 그다음 시험에서는 전교15등까지 올라가는 나름 동네에서 유명한 성적 향상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성적이 향상된 이후로는 공부가 재밌어서 했다기보단 나라는 사람을 주변에 뽐낼 수 있다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거에 쾌감을 느껴 밤새워 공부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순수히 학문에 대한 흥미와 재미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공부를 했던 저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자위하지만 결론적으론 제 성격 자체가 '과시'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형성되는데 영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첫 도박 판치기'

또 하나 도박중독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 대부분이 아는 놀이 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모여 실제로 돈을 걸고 책 위에 올린 동전들의 주변을 손으로 내려쳐 앞 혹은 뒤의 어느 한 방향으로 모든 동전을 다시 만들게 되면 걸었던 돈을 모두 가져가는 판치기라는 도박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나름의 공부 습관에 대한 자신감인지 모르겠으나, 공부는 방과 후 학원과 집에서 혼자 하는 게 잘 된다 생각했고 수업을 들어야 할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쉬는 시간마다 각반 곳곳에서 열리는 판치기 도박판에 껴서 보냈었습니다.

 

판치기에 거는 금액도 그 당시 제가 부모님에게 버스비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1000원씩 받는 용돈을 처음엔 100원 나중엔 500원씩으로 늘리며 제가 보유하고 있는 용돈의 대부분을 탕진 했었습니다. 결국 지는 판이 반복되고 용돈을 모두 잃으면 버스를 타라고 부모님이 정기적으로 사주시던 (슈퍼에서 11장에 천 원씩 집게로 묶어 팔던) 버스 표까지 걸고 했던 모습이 기억나는 걸 보면 이때부터 도박중독자였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운이 좋은 날에는 돈을 따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크게 따는 날 은 저의 수중에 천 원짜리 지폐가 가득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중독자의 대표적인 특성처럼 단 시일 내에 다시 모두 잃었겠지만, 다행히 저는 그 당시 동네마다 유행해서 펌프라는 게임에 (한판에 500원으로 평소엔 비싸서 하지 못했던) 털어 넣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과시욕이라는 부분까지 합쳐져 돈을 딴 날은 주변에서 판치기의 승자라고 나를 추켜세우던 친구들까지 모두 데려가 펌프를 시켜주었고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제가 그날 땄던 천 원짜리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학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도박으로 보냈던 저희 중학교 시절은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