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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년시절 나는 이미 도박중독자였다.

(2)-1 어린시절부터 보이던 중독자의 특성. (유년기)

아마 5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시대 어린아이들이 그랬듯 동네마다 축구, 발야구, 팽이치기, 나이 먹기(전봇대를 하나씩 잡고 했던 놀이였던 거 같네요..) 등의 놀이를 매일매일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이 놀이 중에서는 누군가의 소유물을 뺏고 뺏기는 놀이는 없었지요. 근데 이후 구슬치기를 알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흙바닥에 세모를 그리고 그 안에 구슬을 몇 개씩 걸고 멀리서 쇠구슬을 던져서 세모 안에 구슬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면 그 구슬들이 다 제 것이 되는 놀이였죠. 저는 이 구슬치기를 잘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방구에서 20알에 200원하던 구슬을 부모님을 졸라 한두 봉지 사면 다시 다음날 동네 아이들에게 모두 잃고 오곤 했으니까요. 

근데 어느 날 항상 잃기만 하던 제가 누군가의 것을 가져오는 짜릿함을 알게 된 사건이 생깁니다. 여름 즈음이었던 거 같은데 그날도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세모를 그리고 구슬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워낙 동네가 작다 보니 주변의 누가 어디 사는지까지 모두 알 정도로 친했던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모르는 얼굴의 아이들이 몇 명 놀이터로 놀러와 구슬치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구슬치기를 하냐고, 자기네들은 어디 동네사는 어디 학교 애들인데 우리 동네 한번 놀러 오라고 말을 해주더군요. 알고 보니 버스로 한 10여 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단지에 사는 아이들이었고, 그 당시 등하교를 전부 걸어서 했던 우리들이기에 버스로 10분 거리의 가까운 동네라도 걷기엔 조금 부담스러우니 놀다가도 갈 이유가 없는 동네였습니다.

 

알겠다고 승낙을 한 우리들은 주섬주섬 주머니에 구슬을 챙기고 그 아이들을 따라서 꽤 멀리 떨어진 아파트 동네로 가게 됩니다. 구슬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파트 단지 내의 한 놀이터에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처럼 놀이터 모래밭 사이에 약 1m 정도 폭의 ㄱ자 구조 시멘트 길이 깔려있었고 그 길 양옆으로 수십 명의 아이들의 자신의 구슬을 끝에 걸어놓고 반대편에서 자신의 구슬을 던져 떨어뜨리면 가져가는 식이거나 모서리에 나있는 움푹 파인 홈에 구슬을 던져 넣으면 자신의 특이한 구슬을 따갈 수 있다는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던지는 구슬들은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 구슬이었지만 상품으로 걸어놓는 구슬은 옥구슬, 특이한 색을 띠고 있는 구슬, 어디 베어링 공장에서 얻어 온 거 같은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쇠구슬 등 탐나는 구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가 그날 주머니에 가지고 갔던 구슬은 어렴풋한 기억으론 10개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 일반 구슬을 던져 저보다 어리던 꼬맹이가 걸어둔 옥구슬이라고 불리던 사기 재질로 만들어진 구슬을 하나 떨어뜨렸고 저는 그걸로 그날 장사를 해 약 200개의 구슬을 체육복 주머니에 가득 담아 집으로 왔던걸로 기억합니다. 항상 잃기만 하던 제가 그렇게 구슬을 얻으니 무언갈 걸고 그걸 가져오는 재미에 눈을 떴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구슬 시장에선 자리선정도 매우 중요했는데 최근 오징어 게임에 구슬치기 게임에서 깡패 역할로 나왔던 두 남자가 바닥에 홈을 타깃으로 구슬을 던지던 것처럼 마치 던지면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지만 막상 던지면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지 않는 자리 선점이 중요했었던 거 같습니다. 아침마다 아니 새벽시간부터 그 시멘트 길에서 몇 군데 명당자리라고 봐두었던 자리를 선점하고 제 맞은편에서 제 구슬을 따먹기 위해 아이들이 던지는 수많은 구슬을 줍고 있던 어린 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설 토토든 사설 바카라든 사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나 주식시장 작전세력이랑 비슷한 상황이였던거 같습니다. 그 이후 사회생활에선 저는 반대로 항상 먹히고 이들이 설계하는 판에서 절제하지 못하고 놀아난 패배자가 되게 됩니다.

어쩃거나 그 일 이후 동네 놀이터 대신 구슬 시장으로 평일엔 방과 후 그리고 주말엔 아침부터 마치 직장인 출퇴근하듯 놀러 다녔고 약 1년이 지난 시점 (중학교 입학 전이었던 거 같네요) 저는 약 10000개의 일반 구슬 그리고 형형색색의 남들이 탐낼만한 특이한 구슬을 집에 보관하고 있던 나름 구슬 시장의 큰 손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구슬을 주변에 나누어 주고도 넘칠 만큼 많았지만 왜 그렇게 매일매일 거기로 출근해서 더 많은 구슬을 따오려고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제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유년 시절의 한 부분에서 '탐욕'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되고 저는 청소년기로 진입하며 조금 더 도박이라는 나락으로 다가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