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 전역 이후 내 인생의 얼마 안 되는 일시적인 비도박 기간을 거치고 이에 따른 보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각종 연수생활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설렘과 함께 지방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가 진짜 내 인생이 나락으로 점차 가속을 밟는 시기였던 거 같다.
직장인으로서 받은 첫 월급은 가히 충격적였다. 대학시절 과외니 용돈이니 알바니 여러 가지를 모았던 금액을 훨씬 넘어 약 3백만 원이라는 월급이 세금을 제하고도 내 통장으로 입금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큰돈이 매월 생기게 되니, 자연스레 씀씀이도 커졌고 나름의 프라이드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지방 근무의 특성상 그 지역에서는 돈을 쓸 곳도 없었을뿐더러 평일은 기숙사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가 돈을 쓰던 곳은 매주 올라왔던 원래 나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큰돈이 생긴 나는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듯 다시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은 큰 금액이 매월 생기니 거는 금액조차 학생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도박중독자에게 있어 가장 큰 위험은 ‘내가 지금 돈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돈이 여유 있게 있는데 저걸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건데, 도박중독자들은 돈이 있으면, 도박을 하여 더 큰돈을 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짜릿함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나는 중독자였고 일확천금에 대한 욕심과 순간의 짜릿함을 위해 도박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때는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되어 인터넷으로도 쉽게 도박을 접하게 될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었다. 도박중독자들이 대부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대학교 시절에 도박을 했었던 시절에도 그렇고 직장 생활과 함께 도박을 할 때도 그렇고 내가 가진 총 금액의 20-30% 수준이면 괜찮겠지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사실 계획한 돈을 잃게 돼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다 잃을 때까지 배팅을 했다) 접근했었다. 예를 들면 대학시절에 수중에 돈이 40만 원이 있었고 한번 배팅에 5-10만 원을 배팅했다면, 이제는 월급 30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를 한 번에 털어 넣고 있던 것이다. 모 가끔 따는 날은 금액 자체가 동네 술집에서 술 한 잔하고 밥 한 끼 더 사 먹을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주말이 도래해 고향으로 돌아가 돈을 쓰기 전 다시 잃었지만..) 주말을 기다렸다 고향으로 올라가 친구들을 불러 거하게 술도 사고, 고가의 의류도 사며 나를 과시했었다. 아마 그때 친구들은 내가 대기업에 입사하고 능력이 있어 이렇게 베푼다 생각했을 테지만, 상식적으로 아무리 대기업이지만 월급쟁이가 한 달에 몇 번씩 그런 큰돈을 쓴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또, 하나 기억나는 건 한 명의 직장 선배였다. 지방 근무를 하는 신입사원인 이상 나름 회사 생활에서 눈치를 많이 보게 되기 마련이다. 특별히 잘 보이는 걸 떠나 책 잡힐 정도의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생활하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었다 특히 그 무렵은 아직 내가 도박중독자인 걸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이게 떳떳한 취미생활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회사내에선 배팅을 자제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게 된다. 근무하던 부서의 특성상 가끔 주말 새벽에 현장에 나가 그날의 담당자로서 현장 업무를 감독하고 이것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초창기 신입사원일 때는 일을 배우는 시기라 현장에 나가는 일 자체가 없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어느 토요일 새벽 현장에 처음 나가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날 멘토와 멘티의 관계처럼 현장업무를 교육해 주기 위해 내 부서 선배 한 명이 새벽 현장업무에 동행하게 된다.
현장에 나가 막상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동행했던 선배와 계속 붙어 다니진 않았고, 무전기를 가진 상태로 꽤 먼 거리를 떨어져 각자 상황을 공유하며 일을 했었는데, 혼자 새벽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배팅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고 중간중간 기다리는 동안 전세계에서 열리는 새벽 경기들에 다시 돈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아마 토요일 특근 근무라 그날 일당이 몇 시간에 15만 원 정도 되었던 거 같은데 그 몇 배 금액을 순간 걸고 있었으니 정말 이떄도 심각한 중독자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나의 도박을 더욱더 가속시키는 일이 생기게 된다.
위에서 현장에 나가면 담당자들끼리 무전기를 켜두고 일을 했다고 말했었는데, 내가 배터리 충전을 덜 시킨 건지 방전이 된 건지, 무전기가 꺼져 선배가 나에게 무전으로 계속 무슨 말을 했었는데 내가 대답이 없자 선배가 걱정이 되어 내가 있던 위치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 니 토쟁이가?’ (지방의 특성상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은 사투리를 썼었다) 그때 내가 라이브스코어를 틀고 경기 중계에 정신이 팔려 나에게 오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 진짜 좆됬다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회사에 소문나면 어떻게 하지, 나 아직 신입사원 티도 못 벗었는데 이렇게 직장 생활이 끝나는 건가 등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던 거 같다. 그리고 선배가 나를 구석으로 오라해 추궁을 하자 토토를 한다고 이실직고했었는데, (차라리 여기서 욕을 처먹든 뚜드려맞든 회사를 잘리든 했으면 현재 이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텐데 씨발...) 알고 보니 선배도 나와 같은 토쟁이었던 것이었다. 이후로 같은 공감대를 가진 우리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더불어 도박도 더 대담해지고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그 선배는 사무실에서도 내 옆자리였는데, 이제 메신저로 서로 어떤 경기를 분석했는데, 한번 탑승하시겠습니까? 등의 토쟁이들만의 농담이 일상 대화였고 금액도 강승부라는 타이틀로 50만 원을 넘어 한 경기에 백만씩 걸고 있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예상했듯이 우리는 대부분의 돈을 탕진하게 되었고, 사회 초년생이었으면 누구나 부러워할 월급이고 차곡차곡 저축할 돈이었지만, 나는 다 날리고 다시 돌아오는 월급만 기다렸다 며칠 안에 탕진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폐인처럼 지내다 보니 처음으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보통 월급을 받으면 많은 직장 초년생이 그렇듯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월급의 일정 부분을 적금 형식으로 보내는게 보편적이다. 비슷하게 나도 매월 월급의 1/3 정도를 용돈 및 적금식으로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있었다. 근데 배팅금액이 커지고 자꾸 잃다 보니 부모님께 보내야 할 금액까지 탕진해 버렸고 항상 들어오던 시기에 아들로부터 소식이 없자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시고 나한테 물어보기 시작하셨고, 이때는 그나마 양심이 남아있던 건지 부모님께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처음 간략한 가정환경에 이야기했지만) 성실과 정직을 신념으로 생활하신 분이시기에 나의 이런 고백에 많은 충격을 받으셨고 큰 실망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다신 하지 않겠다고 빌고 있는 나를 쉽게 용서해 주셨고, 아버지는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위로까지 해주시며 돈이 부족하진 않냐면서 용돈까지 챙겨주셨었다.
‘이게 나의 첫 가족을 실망시킨 순간이었다’ 보통 도박에 중독 되어있는 사람의 가족들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며 이해해 주신다 그리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대부분 믿어주신다. 지금에서 생각하지만 사실 이 용서가 제일 위험한 것이고 또 이때라도 도박중독자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그나마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몇 번 안되는 기회라 생각이 든다.
이후 부모님에게 도박을 했다고 이실직고한 걸 선배에게도 말했고, 이제 나는 토토를 그만두겠다며 작별 아닌 작별을 고한 후, 부모님의 실망에 부흥하고자 몇 달을 성실하게 살았다.. 앞으로 어떤 더 큰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는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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