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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린시절부터 보이던 중독자의 특성. (고등학교~입대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데 학기 초 잠시 판치기를 몇 번 한걸 빼놓곤 흥미를 잃어 다른 생각 안 하고 공부에만 집중했던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좋은 학교를 가야 사회에서 어느정도 인정받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제 스스로가 주위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가장 크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저는 이 시절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공부가 주가 되는 삶을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 결과 대학교 입학 전까지 나름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당시 유행하는 입시제도인 수시입학 통해 수월하게 수도권 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저는 동네가 아닌 대한민국 여러 지방에서 모인 많은 친구를 사귀고 술을 비롯한 대학생 특유의 문화를 즐기며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또한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대학생이라면 나름 부모님께서도 성인으로 인정해주신 건지 고등학교에 비하면 많은 지원을 해주셨고, 저 또한 과외와 여러 가지 알바를 통해 나름의 풍족한 생활을 이어가던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박중독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방심하는 틈이 발생하고(사실 이 시절까진 도박이라고 치부되는 제 스스로 제가 도박에 중독되었거나 스스로 절제를 못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역시나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도박의 시작의 그렇듯 친구를 통해 진짜 도박을 처음으로 접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에 입학한 건 2006년도인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던 2002년 월드컵 바로 다음 이어서인지 2002년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한 번 더 기대해서였는지 2006년 월드컵이 시작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축구를 응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그리고 분위기에 취해 축구를 응원하고 우리나라 팀의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한탄하고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기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간격으로 우리나라 팀이 경기를 하는 날을 제외하곤 학생의 본분을 다하고자 도서관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지냈는데 도서관 앞에서 친구가 저를 부르더니 배트맨이라는 사이트를 알려주며 어디 어디 경기에 만 원을 걸어 3만원정도를 땄다고 자랑과 함께 오늘 어차피 도서관에서 밤샐 거면 같이해보자고, 자기가 분석한 내용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꼬시더군요, 사실 꼬실 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친구가 컴퓨터실로 데려가 보여준 배트맨 홈페이지 내역에서 적중이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에 제 내면에서 잠시 동안 숨어있던 도박중독자의 본능이 깨어났고, 이미 돈을 얼마나 입금해야 하나 이런 생각부터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 따라갔던 학교 컴퓨터실에서 바로 배트맨에 가입을 했고 그렇게 3만원을 충전해서 저도 축구 경기에 배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배팅을 한 경기는 경기마다 족족 한게임 혹은 두 게임씩 제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른 결과가 나왔고 이후 매주 3-5만원씩은 잃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사실 이때는 돈 잃는 것보다 빨리빨리 경기에 돈을 걸고 싶은데 회차별로 나누어져 발매 기간이 정해져 있는 배트맨에 시스템에 불만을 가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이런 불만은 사설 사이트로 이어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사설 사이트에 가입을 해 게임을 했던 거 같습니다. 일반적인 경기는 물론 그 당시 라이브스코어 어플에 없던 잡 경기들까지 모두 배팅을 하며 따고 잃고를 반복했고 결국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리고 돈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그나마 그 당시 다행인 건 그 당시는 염치라도 있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짓을 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신 과외비를 거짓말로 사정을 만들어 한달 치를 가불로 받는다던가 국가장학금 혹은 학과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을 집에 이야기하지 않고 모조리 배팅에 사용하는 거와 같은 방법의 하루하루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 말고도 주변에 다른 친구들도 같이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같이 자취방에 모여 지켜보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중에 추가적으로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취업을 해 사회로 진출한 우리들 중에선 아마 저를 제외하곤 대부분 정신을 차리고 평범한 직장인 생활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왜 나와 같이 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왜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해있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경제적, 정신적 곤경에 빠져있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 사람마다 도박에 빠져들기 쉬운 성격이 있고 자제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르다고 하는 글도 보았는데 모두 제가 선택한 일이고 제가 만들 결과이기 때문에 변명도 부끄럽고 그냥 늦은 후회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반년의 학기를 토토에 빠져 보내고 저는 군대로 입대하게 됩니다. 대학교 입학은 제가 도박을 제대로 시작한 시절이었고 한편으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이 시절 정도의 금전적, 정신적 손실이라면 그 당시에는 많은 괴로움이 있었겠지만 도박중독이라는 질병으로서의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면 어느 정도는 회복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입대한 군대에선 다행히 특별한 일은 없었고, 전역 후는 취업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잠시 고등학교 때 공부에 집중하며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았던 시절처럼 무난히 흘러 운 좋게 누구나 다 부러워할 대기업에 취업하게 됩니다.

하지만 도박중독자로서의 비극은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취업과 동시에 도박중독자로서의 특성과 경제활동으로 돈을 구하는 게 쉬워진다는 무서운 사실이 공존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 혹시나 이 글을 보는 학생분들, 사회 초년생 분들은 절대로 도박을 시작도 안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설령 시작을 하고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겪고 계시더라도 아직까지는 바로잡을 수 있는 단계이니 부디 이후의 저의 인생이 어떻게 급속도로 회복 불가 상태로 망가지는지 이야기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정상적인 삶과 나락이라는 경계선에서 머뭇거리시는 분이 이 글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오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에게는 매우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